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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항공전의 역사》 5화 1차 세계대전의 항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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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툰 2024. 3. 2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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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의 항공전

정찰항공기는 기구와는 달리 전선 너머로 침투해 적의 종심을 정찰할 수 있었습니다. 전장의 안개에 숨어 있던 적은 하늘의 눈 아래서 이제 민 낯을 드러냈습니다. 항공 정찰 덕분에 적의 보급품 창고가 증설되었는지, 포병대 화력은 어디로 집중되는지, 하루에 열차가 몇 대나 지나가는지와 같은 정보로 적의 의도를 추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14년,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독일군은 항공 정찰로 러시아군 위치를 확인하고 과감한 포위섬멸을 시도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독일군 장군들 은 관측기의 후방석에 직접 탑승해 전선을 시찰하기도 했습니다. 힌덴부 르크 원수는 “공군 없이는 탄넨베르크도 없다”라는 말을 남겼지요.

 

그러나 항공 카메라가 장착된 저속의 2인승 관측기들은 전투기의 손쉬운 먹잇감 이었지요. 공대공 전투용 전투기의 개발에는 몇 가지 난제가 따랐습니다. 빠른 항 공기에 유의미한 명중률을 내려면 기관총으로 탄막을 퍼부어야 했지만, 당시의 보병용 수냉식 기관총은 수냉 시스템의 무게만 20kg에 달했습니 다. 또한 수평으로 사격하지 않으면 기능 고장을 일으켰기에 급기동하며 발사할 수도 없었고, 마구잡이로 배출되는 탄피가 프로펠러를 파손시킬 위험도 있었지요.

 

항공기에 알맞은 기관총이 필요했습니다. 1911년, 베를린 박람회에서 기관총을 장착한 콘셉트 기체가 전시되었 습니다. 1912년에는 미국의 공냉식 루이스 기관총이 세계 최초로 공중에 서 기관총 사격을 실시했습니다. 1913년에는 프랑스에서 호치키스 항공 기관총이 개발되었고, 유럽의 열강들은 실험적으로 기관총을 장착한 항공 기들을 개발했습니다.

 

1914년 8월 말, 독일군에 파리가 위협당하던 프랑스는 공대공 무장을 갖춘 항공기가 포함된 8개 편대를 급조해 최초의 정규적인 제공 임무를 수행했으며 이후로도 프랑스군은 전투기 운영에 선진적이었습니다. 1914 년 10월, 프랑스 전쟁부는 65개 항공대 중 16개 항공대를 제공 임무 전투 기로 편성했습니다. 반면 개전 이후로도 적절한 항공 기관총이 없던 독일군은 연합군 전투 기의 기관총에 리볼버와 소총 같은 소화기로 처절하게 저항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독일군은 이후 설계부터 공대공 전투를 위해 만든 최초의 진정 한 전투기라고 불릴 만한 포커 아인데커를 세상에 내놓았지요. 1915년 5 월부터 배치된 포커 아인데커의 기총 동조장치는 그야말로 혁명이였습니 다. 조준과 조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이 전방 고정 기총의 효율성은 이전 의 혼란스러운 공중 왈츠를 인간 사냥으로 바꾸었습니다. 연합국 또한 아직 기총 동조장치는 없었지만 포커 아인데커와 같이 전 방으로 기관총을 조준한 채로 비행할 수 있는 뉴포르 11과 브리스톨 스카 웃을 투입했습니다. 공중에서의 전쟁은 이제 연합군과 독일군이 서로에게 기관총을 난사하며 죽고 죽이는, 지상에서의 전쟁과 똑같은 풍경을 보이 게 되었습니다.

 

 

기동전 사상의 영향을 받은 독일군은 항공기의 간편한 운송을 위해서 조립과 분해가 간단한 모듈식 설계를 중시했지요. 당시의 비행기는 짧은 항속 거리로 인해 장거리 이동을 하려면 분해하여 열차와 트럭에 실어 운 송해야 했습니다. 프로펠러와 날개를 분리하고, 엔진을 방수포로 포장해 수송했지요. 붉은 남작을 위시한 에이스들로 유명한 독일군의 제1전투비행단은 제 공권이 위태로운 전선을 종횡무진하며 자주 이동했습니다. 이런 모습이 마치 공연이 끝나면 다음 공연장소로 이동하는 서커스단의 행렬과 닮았다 고 해 일명 '비행 서커스단'으로 불리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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